2012년 11월 8일 목요일

[채소의 기분, 바다 표범의 키스] 올림픽은 시시하다?

올림픽을 현지에 가서 진지하게 구경하니 생각보다 훨씬 흥미로웠다.
와아, 올림픽이란 게 이렇게 재미있었나, 하고 눈이 확 뜨이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일본에 돌아와서 텔레비전으로 다시 보니 이게 또 엄청나게 시시했다.
어째서인가 하니 일본 선수가 나오는 경기밖에 중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언론의 시선은 '일본이 메달을 따는가, 따지 않는가' 하는 것에만 집중했고, 카메라의 시선도 그 논리로만 따라붙었다.

현지에서 나는 일본 선수나 일본팀이 나오는 시합도 물론 보았지만, 그보다는 일본과 관계없는 경기를 계획 없이 볼 때가 많았다.

이를테면 독일과 파키스탄의 하키 시합이라든가. 그런건 그냥 그 자리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이해가 얽히지 않은 만큼 순수하게 즐기고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강하든 약하든 누구나 열심히 땀을 흘리며 애쓰는구나 하는 걸 실감하게 된다. 메달의 수는 국가나 국민의 수준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실제 올림픽에는 진짜 피가 흐르는 뜨거운 분위기가 있다. 신기한 '현장의 힘'같은. 그런데 텔레비전 화면으로는 그게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어딘가로 느닷업시 증발해버린다. 일장기가 올라간다, 올라가지 않는다, 만으로 얘기가 진행되고, 아나운서가 소리를 지르며 여론으로까지 강하게 몰아간다. 이것은 선수들에게도 우리 자신에게도 불행한 일이 아닐까?


무라카미 하루키 - 채소의 기분, 바다 표범의 키스 p.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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