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8일 목요일

[오래된 정원] 내가 지켜온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지난 일년 동안의 열두달 날짜마다 빈틈없이 엑스표가 그어져 있었고
또 이번 연말에 미리 받은 비슷한 새 달력은
아직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무 표시도 하지 않은 저 공백의 날짜들과
이미 표를 하고 지나가버린 작년의 날들이
여기서는 전혀 의미도 없는 시간인 것만 같았다.

내가 지켜온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국 속의 작은 건더기나 정량이 지켜지지 않은 고깃점 하나,
그리고 운동시간을 늘리는 일,
서신검열을 완화하거나 금지된 책을 공식적 절차 없이 반출입하는 일,
폭행한 교도관을 징계하라고 간부들에게 항의하는 일,
기념일마다 항의의 행사를 벌이는 일 따위의 최소한으로 자신을 유지하는 행위들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짓으로 얻어낸 작은 성과들마저 계절이 지나면 사람이 바뀌면서 곧 제자리로 돌아갔다.


황석영 - 오래된 정원(下)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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