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7일 화요일

[독서] 88만원 세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세대 차이, 젋은 세대들의 유신 시대에 대한 향수, 지금 처한 상황에서 우리가 대처해야 하는 자세에 대해 명쾌하게 꿰뚫는 책.
단순히 이전 세대들을 욕하고, 일베를 즐겨하는 젊은이들을 나무랄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한국 사회의 흐름과 구조적 모순을 깨닫고 그들과 함께 상생해 나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
비난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어쨌든 안타까운 개미지옥에서 같이 살고 있는 이들이기에...


다시금 짚어볼 부분을 기록한다.


이전 세대가 거의 대부분의 권력을 가진 챈 나눠주지는 않으면서 연금으로 오히려 이전 세대를 부양하게 되는 지금의 상황.

일본의 경우는 경제성장을 통해서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방향으로 1970년대와 1980년대를 통과했다.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가 내부 공황과 함께 만나게 된 저성장 기조는 윗 세대가 사회적 권력을 완전히 독점할 때 발생하는 현상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젊은 세대의 경제적 독립이 지체되는, 이른바 '실버 스푼 신드롬'이 단적인 예이다. 부모세대에서 독립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독립할 수 없을 때, 사회 전체의 세대간 불균형이 한 집안의 불행으로 구조화하는 것이다.

유신 세대는 지금의 20대와 달리 세대 내 단결력이 높은 편인데, 유신이라는 동일한 경험과 함께 한국 경제의 영광의 30년에 대한 20대와 30대 시절의 기억이 강하기 때문이다. 개별적으로는 20대의 부모들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자신의 세대에게 주어질 무엇인가를 떼어서 20대에게 경제적으로 지원한다는 사회적 대화의 장이 열린다면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협의나 대화의 방식보다는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방식으로 문제를 푸는 것이 보다 빠르다는 유신 시대의 향수를 가지고 있기 대문이다. 이 세대는 성장에 대한 향수를 통한 결집에 익숙해져 있고, 지역으로 묶이는 것을 대단히 선호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이 세대는 세대라는 이름으로 모이기보다는 지역으로 모이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데, 같은 지역의 동일한 세대라면 엄청나게 높은 결집력을 보이기도 한다.
 유신 경제의 향수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지만 또 한편으로는 박정희가 만들어놓은 지역감정의 희생자이기도 한 우리나라의 유신 세대는 사회적으로는 20대가 누려야 할 경제적 몫을 가장 많이 노리는 약탈자이면서도 집에 돌아가면 그들과 부모 관계로 협력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정희 시대나 전두환 시대, 즉 한국경제의 '영광의 30년'을 많은 사람들이 좋았던 시절이라고 추억하고 회상하는 것은 그 시절에 국민소득이 높아서만이 아니다. 그 시절에는 SKY 대학이라고 부르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졸업하지 않아도, 그리고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육사 출신이 아니더라도 성실하게 경제생활에 임한 사람들에게는 적절한 기회와 다양한 패자부활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입체적인 경제활동이 가능했다.
 그 시절로 돌아가는 일은 지금의 20대에게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40대와 50대가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만큼이나 지금의 20대가 젋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가능성이 있었던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사정권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금 벌어지는 승자독식 게임은 '패자부활전'의 개념이 아니라 이를테면 '개미지옥 게임'이라 이름붙일 수 있다.
 명주잠자릿과의 애벌레를 '개미귀신'이라 부르는데, 이 개미귀신은 모래땅에 개미지옥을 파놓고 숨어 있다가 그곳에 미끄러진 개미 등의 작은 곤충을 잡아먹는다. 패자부활전이라면 개미지옥에 떨어졌더라도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패자들끼리의 게임은 일단 개미지옥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일종의 자리 잡기 싸움에 가깝다. 이는 개미지옥의 가장 밑바닥에 누구를 밀어 넣느냐, 즉 "누가 가장 먼저 잡아먹힐지"를 경정하는 문제다. 이 게임에서 운 좋게 이긴다 해도 개미지옥에서 빠진 이상, 잡아먹히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서로 싸우는 대신 협력해서 개미귀신과 맞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건을 벌어지기 어렵다. 왜냐하면 개미지옥 내부에서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모두 목숨을 걸고 개미귀신과 싸워야 겨우 이길 수 있다. 하지만, 몇몇이 방관할 경우 싸우는 것은 명을 재촉하는 일일 뿐이다. 결국, 다들 목숨 걸고 싸우는 대신 조금 늦게 잡아먹히길 원하게 된다. 승자독식 체제에서 고졸실업과 비정규직의 여성화라는 문제는 이렇게 잔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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