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8일 일요일

대한항공 땅콩사건, 그리고 여승무원 신상털기를 보고 든 생각.

지난 주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 - 백화점 모녀와 땅공회항’ 편을 보고서,
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의 행태, 특히 재벌들이 돈과 권력을 기반으로,
조선시대의 탐관오리와 양반들이 상민과 노비들을 대하는 태도 그대로를 보여주는 모습을 보고, 과연 우리는 봉건시대보다 얼마나 더 발전해왔던 것인가, 그간의 저항과 운동과 혁명은 무엇을 위해 했던 것이고, 무엇을 이루었나에 대해 자괴했었다.

'그것이 알고싶다', 우리가 몰랐던 '땅콩 회항'의 이면

그런데 하루쯤 지났을까, SNS에서 엄청난 ‘좋아요’를 받으며 급속도로 퍼지는 글들이 있었는데, 다름아닌, 땅콩 사건의 당사자 중 일부이자 거짓증언한것으로 알려진 승무원의 신상과 얼굴이 공개되며 법정에서 진술하고 나온 후 악마의 미소를 짓고 있는다는 둥, 저련x는 사회에서 매장당해야된다 라는 등의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었다.
다음은 그 글 중 하나이다.(여러 글이 있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음 글을 제외하곤 전부 삭제조치가 되어 현 시점에서는 링크를 찾을 수가 없다. 아마 명예훼손 등의 문제가 맞물려 자진 삭제하였거나, 관리자에 의해서 삭제되었을 수도 있겠다.)

땅콩보다 너네가 다 나빠, 김도희 조빛나

제목을 보고, 나는 대한항공 관계자가 사건을 호도하기 위해 단 제목인 줄 알았다. 누가봐도 저건 조현아보다 거짓증언한 승무원이 더 나빠라고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가 땅콩(정말 땅콩을 얘기하는 것인지, 조현아 부사장을 얘기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보다, 승무원의 거짓증언이 뭐가 더 나쁘다는 건지. 게다가 이 글의 댓글들을 보면 신상을 까는게 과연 맞느냐는 일부 문제제기에, 작성자는 신상털기라는 관점에서 보지 말라고, 진실은 묻히면 안된다고 얘기한다. 자기는 저 승무원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고 한 행위가 비인간적이라서 그러는 거란다. 그러면서 명예훼손을 얘기하는 사람에게 자신은 최초 공개자가 아니니 최초 공개한 사람에게 따지라고 한다.
[위 블로그글의 댓글 일부]

지금 이순간, 조현아에 대한 분노보다 거짓증언한 것으로 알려진 승무원에 대한 분노가 더 커지는 상황을 보며 나는, 다음 3가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1) 저 승무원의 이름과, 얼굴과 출신학교가 밝혀지면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것인가?
저기서 진실을 밝히자고 얘기하는 것은 대한항공측에서 과연 교수직을 제안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여승무원의 진술이 거짓인지가 대상이다. 해당 승무원이 김씨인지, 이씨인지가 진실이 아니다.
진실을 밝히는 것과 신상을 터는 것과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진실을 밝히는 게 더 중요하다면 정말 교수직을 제안했는지를 파고드는 것이 맞다.
끔찍한 살인을 저질러 체포된 용의자를 모자이크하면, 대중은 얼굴 공개해라, 이름 공개해라 소리 높여 외친다. 초상권과 인권이라고 얘기하면, 인간이길 포기한 자에게 무슨 인권이냐고 묻는다.
나는 되묻고 싶다. 아직 법적인 판결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얼굴과, 출신학교와, 심지어는 그의 가족까지 공개하는 것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는데에 어떠한 도움이 되는지?
비슷하게 생긴 사람, 비슷한 이름, 같은 학교, 지방 사는 사람을 피하겠다는 것인지,
그저 저런 사람은 대체 뭐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생긴사람인지 말초적인 궁금증일 뿐은 아닌지.
그의 가족과 지인, 같은 지역, 같은 학교, 심지어 닮았다는 이유로 받는 시선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장 큰 문제는 만에 하나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면, 그 이후에 누명이 벗겨진다 한들 그 사람이 받은 정신적 피해는 어떻게 할 것인지 나는 되묻고 싶다.

2) 아직 확인되지 않은(하지만 가능성이 상당히 높을 것으로 추정이 되는) 교수직 자리를 제안받고 거짓증언했다는 얘기가 땅콩보다 더 나쁘고, 비인간적인 행위인가? 
승무원을 회유한 회사와 재벌들에 대한 비난을 하고, 승무원의 거짓 증언은 그 다음이 아닌가? 어찌되었던 회사/재벌이 ‘갑’이고, 승무원도 단지 ‘을’이다. 박창진 사무장도 처음에는 회사가 시키는 대로 거짓증언을 하다가, 회사측에서 뿌린 것처럼 보이는 자신의 대한 비판 찌라시가 도는 것을 보고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 열내며 욕하는 사람들 중에 만약 당신이 조직에서 그런 지시가 내려왔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주어지는 그 상황이 되었다면, 당신은 떳떳하게 그것을 무시하고 진실을 밝힐 용기가 있는지...
상부의 압박과 회유에 굴하지 않고 양심을 지키는 게 맞고, 여승무원이 잘했다는 것도 아니고, 비판받을 지점이 분명히 있지만,
지금 여승무원을 욕하는 사람들 중에 갑의 달콤한 유혹을 물리치고, 양심을 지킬 자신이 있는가?

3) 악마의 미소라고 알려진 순간의 캡쳐사진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나타낼 수 있을까?

[차례로 여승무원 ‘악마의 미소’ 캡쳐 사진, 조현아의 '악마의 눈빛' 캡쳐 사진, 오연서의 '연기대상 표정 논란' 사진]

저 사진속 사람들이 사진을 찍힐 당시의 마음은 본인만이 안다. 동영상도 아니고, 찰나의 순간을 가지고 그 사람의 기분을 전부 표현할 순 없다.
당신의 가족의 장례식에서 당신의 행동을 누군가가 사진찍는다고 생각할때, 단 한순간도 ‘웃는’ 또는 ‘웃는 것 같은’ 사진이 안찍힐 자신이 있는가?

이 사건을 만든 조현아와, 비슷한 행위를 일삼는 재벌들의 행태에 분노한다. 그들은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나를 더 분노케 하고 무력하게 만들고 짜증나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재벌들의 행태와 다를바 없는 행동을 보여주는 일반 사람들의 행동이다.
예를 들면 얼마전 트위터에서 본 글같은,
류노스케, @ryunojunryunoju · 대한항공 타서 승무원들에게 '땅콩은 없냐', '나도 땅콩 까달라', '사무장 나오라고 해 봐라'등의 '농담'을 하는 병신들이 그렇게 많다고. 그 일로 승무원들이 겪었을 계급적 모멸에 대한 공감이 없는거지. 우리나라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드라마에서 나타나는 재벌가 자제와 일반 서민과의 싸구려 사랑 스토리,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그리며 재벌들을 정당화하는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
재벌들이 탈세를 하고, 자식에게 정당치 않은 방법으로 기업을 물려주고, 자기보다 열살 많은 직원을 매값이라며 몽둥이로 때려도 벌받지 않는 사회를 소리높여 비난하면서,
본인들 또한 같은 상황에서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
상사라는 이유로, 선배라는 이유로, 거래관계에서 우위에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정말 흔히 볼 수 있는 손님이라는 이유로 식당 아주머니와, 알바생들을 상대방을 업신여기고, 막 대하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들 말이다.

재벌들에게, 가진 돈의 크기가 이 곧 그들이 가진 권리의 크기인줄 착각하는 것들에게 인간적으로 살기를 기대하기는 그들의 수준이 너무나도 낮다.
하지만 그들을 제외한 우리 ‘을’들은 ‘갑’이 되려 하기 전에, 갑과 을이 평등한 세상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사건에 대한 분노만 있지, 당한 자들에 대한 공감도 이해도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제2, 제3의 사건은 계속 일어날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맨 처음 링크한 기사의 마지막 기자의 글을 옮겨본다.
자신이 소유한 자본을 소비할 때, 사람도 잊고 상황도 잊고 그저 '갑'과 '을'의 관계만을 최우선시하는 모습은 이제 일상화되어 가는 수준이다. 감정노동자들과 서비스업 노동자들이 점점 더 많은 고객들에게 당하는 물리적, 심리적 폭력을 보면 자명하다. 이에 앞서 비난을 받았던 '라면상무'나 수많은 '갑을' 논란도 사실 본질은 다르지 않다.
자본과 소비 앞에 인권은 없고 내 권리만 있다. 그 병폐가 극대화된 것이 대한항공과 조현아 전 부사장 사건이다. 재벌 오너는 경영보다 소유가 먼저다. 내 소유의 비행기에서 폭언을 하건 비행기를 되돌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들 개개인에게 어떤 철학이나 인권의식을 기대하는 일은 이제 어렵다고 봐야 하는 수준일 것이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2015년에도 여러분의 그 정의로운 선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진행자 김상중은 프로그램 말미 이렇게 말했다. 갑들의 횡포가 만연한 이 사회에서 박창진 사무장과 제보자들의 용기는 그래서 중요하다고. 과연, 여러분이라면 그런 상황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고.
<그것이 알고싶다> '백화점 모녀와 땅콩회항'는 이 질문 하나만으로 한국사회의 경종을 울리는 값진 기획일 수 있었다. 너는 갑질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느냐는 질문 말이다. 그렇다. 우리 개개인인 일상에서 마주치는 갑과 을의 관계 속에서 과연 조현아와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행여 '먹고사니즘'에 의거 교수직을 제안받고 미소를 지었던 그 여승무원과 같은 행태에 머무르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2015년 1월 12일 월요일

요즈음 자주 사용하는 뉴스 앱 - msn 뉴스

내가 주로 정보나 뉴스를 읽는 방법은 크게 다음과 같다.
1) 눈여겨본 블로그를 Feedly에 등록해서 구독한다
2) IT관련 매체를 몇개 등록하여 Pulse 와 Flipboard 앱에 등록하여 구독한다.
 - 예전에는 Feedly로 한꺼번에 챙겨봤었는데, ‘읽지않음’ Count에 대한 강박증 때문에, 굳이 읽지도 않아도 될 기사를 읽거나, 습관처럼 ‘읽음’ 처리를 하게 되어서 뉴스/블로그 구독을 각기 다른 앱으로 쪼갰었다.
3) 트위터를 통해 몇몇 트윗유저들을 IT/시사로 구분해서 등록하고 틈날때마다 타이틀과 요약 위주로 읽는다.

위의 방법만으로도 대부분의 이슈는 접하지만, 주로 챙겨보는 정보가 IT에 치중되어 있어 가끔 일반적 뉴스를 보고 싶을 때가 있는데, 최근 이런 뉴스를 보기 위해 자주 쓰는 앱이 하나 생겼다. 바로 'msn 뉴스' 앱이다.
 
msn 뉴스 엡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사를 볼 때 뉴스앱이 아닌,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이용한다. 포털앱이지만, 홈 화면의 많은 페이지가 뉴스를 할애하고 있어, 포털이라고 부르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고, 종합 뉴스앱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나도 기존에 이슈가 궁금할 땐 주로 네이버나 다음앱을 이용했는데,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보고 싶지 않은 뉴스라던가, 어서 클릭하라고 유도하는 제목 들을 보게 되고, 순간의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기사를 읽다 기레기에 분노하고, 낚인 나 자신에게 분노하고, 날린 시간에 분노하게 된다.

반면 msn 뉴스 앱은 그런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찾아볼 수 없고(운영부서에서 선별하는 듯), 특히 자신이 원하는 카테고리를 선별할 수가 있어, 연예, 스포츠 등 관심없는 분야는 안보이게 할 수 있다.
아무래도 국제 정세나 경제 쪽은 챙겨보고 싶은데, 그러기가 쉽지 않아 해당 카테고리의 기사를 보기 위해 자주 접속하게 된다. 무엇보다 포털앱에서는 거의(아니 전혀)볼 수 없는 신문의 사설도 챙겨볼 수 있다. UI도 깔끔하고 폰트도 커서 읽기도 편하다.

다만, 단점이라며느 제휴한 일간지의 수가 적고, 며칠 지난 기사는 리스트에서 없어져 과거 기사를 볼 수가 없다는 것.

다운로드는 아래.

금의 홍수, 에드윈 르페브르, 레디셋고

금의 홍수



1905년. ‘금의 홍수’가 첫 출간된 해이다.
우리나라 역사로 따지면 무려 조선시대 고종 말기, 을사조약이 체결된 해;;
하지만 국내에는 무려 100여년이 지난 2013년 국내에 번역되어 첫 출간된 책이다.

100년이라는 시간은 인간의 인생을 다 담아내지 못할 정도이고, 특히나 1~2년마다 급격하게 변화는 현대사회의 시간의 흐름으로 따지면 앞으로의 100년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데 이 책은 무려 100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에 국내에 출간이 되었고, 이 책에서 주인공들의 돈을 향한 탐욕과 금융시장에서 상상력에 대한 움직임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예전에 조지오웰이 1949년에 출간한 ‘1984'를 읽으며, 작가의 통찰력에 섬뜩한 적이 있었는데, 조지오웰보다 2배의 시간을 내다 본 작가의 통찰력도 대단하지만, 아직도 인간의 심리와 탐욕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현 자본주의 시대가 100년전과 크게 다르지 않음인지도 모르겠다.

‘금본위제 하에서 실물과 화폐 가치, 그리고 이들의 상관관계에 따라 주식과 채권 시장이 서로 어떠한 영향을 주고 받는지’를 소설의 형식으로 간결하게 풀어낸 이 책은, 100년전 의 시장경제와 지금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때,  경제 이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거나, 중/고등학생의 경제학 학습을 위해 읽어보면 좋을 듯한 책이다.


한꺼번에 큰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냥 참고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다 - 에드윈 르페브르
채권은 현재 표준 순도의 금 시세로 원금과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만약 그린넬의 작업으로 인해 금이 쇠처럼 헐값이 된다면 1,000달러짜리 채권은 50온스의 가치밖에 안 될 것이다. 다른 금속들이 금을 대체한다면 회사들이 새 동전으로 대금을 지불 받는 고통을 겪을 것이다. 그게 뭐가 되든 간에 회사들은 자신의 주식에 대한 배당금을 똑같은 방식으로 지불하면 된다. 하지만 채권에 대한 이자는 폭락한 금값을 기준으로 지불해야 한다. 결국 채권 보유자들은 망하게 될 것이다.
새로 쏟아지는 매도 물량으로 시장은 미친 듯이 요동쳤다. 한 주 동안 월 스트리트에서 벌어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채권 가격의 급락 사태는 ‘저가 사냥꾼’들을 혼란에 빠트렸다. 채권이 왜 이렇게까지 싸졌는지 그 까닭도 모르면서, 그들이 채권을 사들이도록 홀릴 때까지, 가격은 계속 하락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채권 투기꾼들은 예전에 사 두었던 채권들을 어쩔 수 없다는 듯 내다 팔았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불확실성만을 더 가중시켰다. 일부는 팔고 또 일부는 사면서, 보통 때 같으면 느리고 조용히 움직였을 우량 주식들이 마치 조작된 것처럼 요동쳤다.

“은행은 주주에게 배당금을 많이 주려고 존재하는게 아닙니다. 서민을 보호하는 동시에 사업가와 전체 공동체를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요. 한 해에 25만 달러의 수입이면 사람들의 가장 호사스러운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충분한 액수입니다. 저한테는 충분히 그 이상이지요. 나머지는 인간의 선을 위해서 헌신하는 데 쓸 생각입니다."
상상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위대한 금융인이 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