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7일 금요일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까마귀에게 도전하는 새끼고양이

센다가야의 뒷골목을 산책하다가 까마귀에게 시비를 거는 새끼고양이를 발견했다.

커다란 까마귀 몇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고,
조그맣고 하얀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그걸 향해 덤벼들었다.
물론 까마귀 쪽이 덩치도 큰 데다 힘도 세고 수도 많다.
부리도 날카롭다.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싸운다면 새끼고양이는 승산이 없다.
전혀 없다
그러나 고양이는 진지하게 으르렁거리며 과감하게 가지를 타고올라갔다.
어째서 그러는지 사정은 모르겠다.
뭔가 대단히 맺힌게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까마귀 쪽에서는 시비를 받아줄 생각이 없는지 
고양이가 다가오면 "까악"하고 놀리듯 한 번 울고 가까운 다른 가지로 사뿐히 이동할 뿐이다.
고양이는 지지 않고 다른 까마귀에게 도전하지만,
그 까마귀 역시 "가악" 울고 다른 가지로 옮겨간다. 
적당히 고양이를 데리고 노는 것이 역력했다.
...

어찌됐건 고양이는 필사적으로 쫓아가고,
까마귀는 상대를 약올린 뒤 날개를 펴려 휙 도망가는 구도가 끝없이 되풀이되다보니
좀 지겨워져서 그 자리를 떴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
다치지나 말았으면 좋겠는데.
하여간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무모한 새끼고양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젊은 시절의 나와 비슷하다.
"상대를 잘못 만났어. 게임이 안돼"하고 누가 말려도
나는 넘어야 할 벽이 있으면 꼭 기세 좋게 시비조로 덤벼들었다.
자랑이 아니라(그런 짓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하고 이제와서 반성하는 일도 많다) 
그것은 단순히 내 천성이었다.
타고난 성격. 바꿀 수가 없다.
보기와 달리(랄까) 흥분을 잘한다.
덕분에 여기저기에서 아픈 경험이 많았다.

내게 까마귀 떼란 한마디로 '시스템'이었다.
여러 가지 권위를 중심에 둔 틀.
사회적인 틀, 문학적인 틀.
당시 그것은 우뚝 솟아오른 돌벽처럼 보였다.
개개인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탄탄한 존재로 그것은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기저기 돌이 무너지고
벽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다하지 못하게 된 것 같다.

그렇다면 환영할 상황일지도 모른다.
다만 솔직히, 시스템이 탄탄했을 때가 싸움이 쉬었다.
즉, 까마귀가 제대로 노은 가지에 앉아 있을 때가 구도를 읽기 쉬었다.
지금은 무엇이 도전해야 할 상대인지
무엇에 화를 내야 좋은지 도통 파악하기가 힘들다.
뭐, 눈을 부릅뜨고 보는 수밖에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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