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2일 화요일

[독서] 정글만리

조정래의 새 장편소설 정글만리를 1주일만에 다 읽었다.
큰 책은 아니었지만, 권마다 400페이지 총3권, 1,200페이지인데, 정말 쉼없이 읽은 것 같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보통 10권은 하는 장편소설을 써오던 조정래 작가의 글 치고는 다소 적은 분량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조정래 작가의 소설은 흡입력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다만 조정래 작가속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말투는...너무 시대착오적이어서 손발이 오그라든다.(한강을 읽을때까지는 그 시대상을 반영하는 말투였거니 했는데, 정글만리마저 60년대 흑백드라마에 나오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남녀간의 대화가 곳곳에 난무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중국에 대해, 중국 사람에 대해 사실 나는 이해 또는 생각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저 최근에 국내 유명한 관광지엔 중국 사람들로 바글바글하고, 그들의 시끌벅적한 목소리와, 질서없는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며, 간혹 나오는 장기매매와 엽기적인 사건들(인육 판매, 가짜 달걀 들, 공개 처형 등)에 혀를 내두른게 전부였다.

그러나 중국은 근 2천년동안 GDP 세계1위의 국가였고, 세계 3대 발명품(화약, 종이, 나침반)을 만든 나라이며, 어마어마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였다. 그러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항상 세계의 중심에 있었던 중국이 근대에 들어 식민지 열강에 침범당하면서 후진국으로 한때 전락했지만, 그 어느나라보다도 가파르게 성장해왔으며 지금은 G2, 아니 곧 G1을 넘보고 있는 나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정치적, 경제적 정책때문이 아닌 무구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중국의 진정한 힘이 있었기 때문이에 지금의 중국이 있는 것이다.

단순히 현재의 겉모습을 보며 중국은 미개한 나라라고 무시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을 소설 정글만리를 통해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 대하드라마는 시시하다며 중국 대하드라마만 줄기차게 보던 엄마의 말 또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중국, 그 중에서 역사가 깊은 '시안'을 방문해보고 싶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며, 마음에 남았던, 몇가지 글귀를 밑줄 쳐 본다.


'역사에서 배운다'는 말은 멋지기는 하지만 정작 배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아요 - 정글만리2, 43p

중국 정부가 그 지역을 대상으로 서부대개발을 시작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어요.
이미 심각하게 노출된 극심한 지역 격차는 극심한 빈부 격차로 이어지고, 극심한 빈부 격차는 극심한 사회 불안 요인이 되고, 극심한 사회불안은 극심한 정권 위협으로 작용하게 되니까 정부가 그 해결책으로 내놓은 게 서부대개발 프로젝트 아닙니까? - 정글만리2, 60p

나라에 정책이 있으면 우리에겐 대책이 있다 - 정글만리3, 243p
'사기'를 쓴 역사학자 사마천, 그 사람이 기원전, 그러니까 2,100년쯤 전 사람인데, '사기'에다 돈과 인간의 심리에 대해 아주 기막히고 절묘한 표현을 했소.
자기보다 10배 부자면 헐뜯고, 자기보다 100배 부자면 두려워하고, 자기보다 1,000배 부자면 고용당하고, 자기보다 10,000배 부자면 노예가 된다. 이게 어디 2,100년 전 분석 같소? 어떤 예리한 심리학자가 오늘날의 인간 심리를 갈파한거지. 사마천이 '중국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칭송받는 탁월한 인물이니까 그렇게 예리하게 갈파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때 이미 중국은 돈이 인간사회를 어떻게 지배하고 있었는지, 돈이 인간사회에서 얼마나 큰 권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는지, 정치제도는 봉건주의였지만 경제구조는 그때 이미 자본주의 형태였다는 것 등을 두루두루 확인하게 해주고 있소. 중국사람들과 돈, 그 상관관계는 이렇게 뿌리가 깊소.

고달프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고, 외롭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더냐. 자기 인생은 자기 혼자서 갈 뿐이다. 남이 가르쳐 주는 건 그 사람이 겪은 과거일 뿐이고, 네가 해야 할 일은 혼자서 겪어 나아가야 하는 너의 미래다 -  정글만리3, 271p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다음에는 의심하지만, 계속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이건 독일 나치스의 선전장관 괴벨스가 한 말이오. 중국 인민들도 당의 끝없이 되풀이되는 정치선전 속에서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오. 그리고 중국의 부모들이 자식이 어렸을 때부터 반복해서 가르치고 당부하는 두 가지 말이 있소. '머리를 내미는 새가 총 맞는다.' 또, '뭐든 다 네 맘대로 해도 되지만, 공산당과 적이 되는 일은 하지 말아라.' 그리고 당에 도전하거나 거역하게 되면 어떤 일을 당하게 되는지를 계속 확인하면서 중국 인민들은 살아왔소.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천안문 사태, 파룬궁 검거와 금지 사태 등을 거치며 중국 인민들은 침묵이 금인 것을 체득하고 익힌 것이오. - 정글만, 383p